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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

금성을 밤에 볼 수 없는 이유

하늘의 별들은 밝기가 일 년 내내 일정하고 별자리 모양도 변하지 않는다. 또한 별이 뜨고 지는 위치도 항상 일정하고, 뜨고 지는 시각도 일 년을 주기로 똑같이 반복된다. 이런 별들을 우리는 항성이라고 부른다. 항성만 보면 우주의 모습이 변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보기에는 별과 차이가 없는데 밝기가 변하고 하늘을 방황하는 별이 5개 있다. 행성이라 부르는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이다. 천문학자들을 수천 년간 골치 아프게 했던 것이 이 행성의 문제였다. 그중에서도 금성과 화성의 움직임이 가장 두드러졌고 이해하기 힘들었다.


별은 뜨는 시각이 매일 규칙적으로 빨라지기 때문에 1년 동안 밤하늘의 어느 곳이든 위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직녀성은 어떤 날은 한밤중에 천정에서 보일 때도 있고, 어떤 때는 새벽 동쪽 하늘이나 서쪽 하늘에서도 관측된다.

그럼 금성은 언제 어디서 관측할 수 있을까? 금성을 한밤중에 볼 수 있는 날이 있을까? 금성이 별이라고 해서 새벽녘 동쪽 하늘에서만 보이는 것은 아니다. 어느 날 갑자기 초저녁 서쪽 하늘에 밝은 금성이 나타나기도 한다. 금성의 밝기는 -4등급 이상이기 때문에 일등성인 견우성보다도 100배나 밝다. 다른 별들과 비교가 안 될 만큼 밝게 보이기 때문에 금성이 서쪽 하늘에 나타나면 누구나 그것이 금성임을 알 수 있다.


어느 날 초저녁 서쪽 하늘에 갑자기 나타난 금성은 며칠간은 금방 서쪽 지평선 아래로 지기 때문에 오래 관측할 수 없다. 그러나 이때부터 금성은 밝기가 점점 더 밝아지며 동쪽 별자리 방향으로 빠르게 이동한다. 별자리는 서쪽으로 지는 시각이 하루에 4분씩 빨라지지만 금성은 이보다 빠르게 동쪽을 향해 움직이므로 금성이 서쪽 지평선 아래로 지는 시각은 계속해서 늦어진다. 이 과정은 3~4개월에 걸쳐서 일어나는데 금성이 최대한 동쪽으로 이동하게 되면 밤 11시가 다 돼서야 금성은 서쪽 지평선 아래로 진다.

그러나 금성은 갑자기 방향을 서쪽으로 틀어서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금성은 밝기도 조금씩 어두워지고 서쪽 지평선 아래로 지는 시각도 빨라진다. 1~2개월 안에 금성은 초저녁에 서쪽 지평선 아래로 사라져서 보이지 않는다. 이 일련의 과정에서 밤 12 경인 한밤중까지 금성이 하늘에 보이는 날은 없다.

금성이 새벽녘 동쪽 하늘에 나타날 때도 비슷한 과정이 반복된다. 어느 날 갑자기 태양이 뜨기 직전 동쪽 하늘에 아주 밝은 별이 나타난다면 금성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때부터 금성은 뜨는 시각이 점점 빨라져서 새벽녘에는 꽤 높은 하늘에서 빛나고 있을 때도 있지만, 뜨는 시각이 느려지면 새벽녘 동쪽 하늘에서 보이지 않는다. 금성이 밤 12시 이전에 뜨는 예는 없기 때문에 동쪽 하늘에서 관측이 가능한 시기라 해도 한밤중에 금성을 볼 수는 없다.


수성도 금성과 마찬가지로 한밤중에 볼 수 없다. 더구나 수성은 밝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초저녁이나 새벽녘에 보일 때도 아주 낮은 고도에서 며칠만 관측 가능하기 때문에 수성의 정체를 확인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그래서 수성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천문학자도 많다.

하늘이 지구를 하루에 한 바퀴씩 돌고 있으므로 하늘에 떠 있는 천체들도 매일 지구를 돌고 있다. 그리고 태양은 별자리 사이를 하루에 조금씩 움직인다. 따라서 우리가 한 밤 중에 어떤 별자리나 별을 보려면 태양과 많이 떨어져 있어야 한다. 특정 별자리와 태양이 이루는 각도가 90도 이상이 되면 이 별자리를 한밤중에 관측할 수 있다. 태양은 별자리 사이를 한 바퀴를 도는 데 1년이 걸리므로, 별자리들은 1년을 주기로 태양과의 각도가 커졌다 작아졌다 반복한다. 따라서 별자리 별로 1년에 반은 한밤중에 관측이 가능하고 반은 한밤중에 관측이 불가능하다. 이것은 모든 천체에 해당하기 때문에 일 년 중에 언젠가는 한밤중에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수성과 금성은 절대로 한밤중에 볼 수가 없다. 그렇다고 수성과 금성이 움직이는 속도가 태양과 갈아서 항상 제자리에 있는 것도 아니다. 왜 수성과 금성은 한밤중에 보이는 날이 없는 것일까? 이것은 천동설을 주장하던 천문학자들이 이해하고 설명할 수 없었던 골치 아픈 행성의 문제 중에 하나였던 것이다.

금성이 지구 안쪽 궤도에서 태양을 돌고 있다는 지동설로는 금성의 위치가 태양과 일정한 거리 안에서만 변하므로 금성이 한밤중에 보이지 않는 점을 쉽게 설명할 수 있다. 반면, 금성을 한밤중에 볼 수 없다는 사실은 천동설이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았다.